고려 고종19년에 백련 결사문을 발표하여 참회와 정토를 강조한 백련결사 운동은 송광사의 정혜결사운동과 함께 고려 후기 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. <동국여지승람>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"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서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"이라고 할 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답다. 백련사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. 이 삼존불은 중앙 본존불이 석가여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우의 불상은 보살상이 배치되어야 하는데도 여래상을 안치한 점이 특이하다.
월남사지는 월출산 정상과 양자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평지에 위치한 전면 175m, 측면 185m인 장방형의 사지로 총 면적은 1만 여 평에 달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그 규모나 지세면에서 인근 무위사보다 컸으리라 추측된다. 지금은 백제계 석탑이라 하여 주목받고 있는 삼층석탑 (보물 298호)과 진각국사비 (보물 313호) 등 2점의 유물이 남아있으며 석탑을 주변으로 외각 담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. 또한 주변 민가에 사리의 기단석이나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유물들이 남아 있다. 월남사지에서는 기와와 청자, 백자편 등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려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들이며 특히 월남사의 건물 벽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청자타이루편이 발견되어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다.
무위사는 강진읍에서 북서쪽으로 16km 쯤에 자리한다. 이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(617년)에 원효대사가 이곳 월출산 남쪽 기슭에 창건하여 관음사라 했다가 1 555년 태감선사가 지금의 이름인 "무위사"로 불렀다고 전한다. 극락보전을 제외하고는, 그 당시 지어졌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버렸다. 극락보전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. 해방 이후 1 956년에 극락전을 수리 보수하고 보존각을 새로 세워 그 안에 벽화를 봉안했다.
월출산은 “달 뜨는 산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, 그리고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골고루 조화를 이룬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. 소백산맥이 목포 앞 바다로 흘러가다 평지에 돌출된 잔구 형태의 월출산은 천황봉(809m)을 중심으로 산 전체가 수석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.